
방콕의 어느 카페에서...
흐린 기억을 더듬어 글을 써본다. 혀끝에 남은 알싸함을 억지로 기억하면서 한 자, 한 자 적어나간다.
몇 번을 써놓고 또 지운다.
내 혀 끝에는 그 날 것의 거친 뒷맛이 흐릿하게 나마 남아 있는데, 손끝에서 나오는 것은 지나치게 잘 익은 혹은 거칠어 지고 싶어 억지로 긁어낸 것 같은 여린 단어 쪼가리들뿐.
서른을 바라보던 난 내 감성이, 내 열정이, 내 독기가 그렇게 그 자리에 영원히 있어, "그래 나라는 녀석은 죽어도 철이 들지 않을 걸"이라 생각했지만, 20년을 걸어와 돌아보니 그 곳에는 생각보다도 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만", "아집", "격정"
굳이 그 사라진 자리에 있었던 것을 기억해보자면 그렇다.
운좋게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딱히 걱정이 없을 것 같아 보이던 미래에 취해 스스로는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믿은 나머지, 그렇게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그냥 시간을 시간 자체로 보내면서 매일같이 끊임없는 자아의 심연에 빠져들던 나날들. 하루에 10시간 넘게 글을 쓰고, 다시 스스로의 글을 비판하고, 스스로가 낸 상처를 꿰매어가면서 탈고하던 시간들의 뒤에 남겨졌던 천여개의 글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오만"의 결과로 더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금강석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스스로의 감성과, 스스로의 독기는 놀랄만큼 시간에 쉽게 다듬어져 버렸고, 이제는 그냥 그 어떠한 영혼도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함과 꼬투리 잡히지 않을 수준의 논리만을 담은 소피스트적인 보고서들이 내 열손가락으로 만들어내는 전부가 되어버렸다.
굳이 조금 더 짜내보자면 간간히 인스타에 올리는 5분이면 휘발되어 버리는 감정의 쪼가리 몇개 정도가 굳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혼이라면 영혼이랄까... 그래도 어쨌거나 그런 것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면 점점 흐릿해져 가는 그 때의 감성을 영원히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 꾸역꾸역 적어보고는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기억 속의 그것들처럼 심장을 두드리지는 못하기에, 그냥 하루하루의 아쉬움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어쨌거나 또 무언가를 써본다.
물론, 다시 그 감성과 열정, 그리고 격정이 돌아온다 한들 이제 늙어버린 이 몸으로 감히 다룰 수 조차 없겠지만...
어느날 문득 아이를 보았다.
이제 큰 아이는 16살이 되었고, 여기 방콕 기준으로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코로나 - 미국 - 한국 - 태국이라는 급격한 환경변화를 겪으면서 사춘기까지 맞이한 아이는 뭔가 소통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있었고, 아이가 밀쳐내는 순간 순간마다 스스로의 시들어버린 감성을 깨닿게 되는 것이 꽤나 서글펐다. 스스로는 여전히 철이 없는 존재고 그래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모든 노력의 결론은 "나는 이제 꼰대이고 그것은 변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스무살의 내가 남겨놓았던 감정의 조각들.
어떻게 하든 세상에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했던 그 감각의 기록들.
지금 스무살의 내가 있다면 혹시 이 아이에게 조금은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이 아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나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격정을 겪으며 살았던 스무살의 아빠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이라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떠나가던 때의 나이가 되어가는 지금의 내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의 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려보려 하듯이...
그렇게 다시 광활한 웹세상을 떠돌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로 옮겨가던 와중에 그 어딘가에는 작은 편린이라도 혹시나 남아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어디에도 작은 편린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시절 내가 남겼던 수천건의 감정들은 "난 언제든 이런건 다시 써낼 수 있어"라는 스스로의 오만 앞에 그렇게 티끌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아이는 죽을 때까지 스무살의 아버지가 가졌던 감정과 생각들을 만나지 못하고 중년의 아버지만 기억하게 될게다. 물론 그것도 아이가 중년이 되면 나름 고마운 추억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하루하루 감정과 환경 사이에서 밀리고 치이는 아이에게 혹시나 도움을 줄지도 모를 스무살의 아버지가 없음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흘린다.
지금 아주 작게 남은 이 감성이라도 사라지기 전에 적어놓아 50을 바라보는 미래의 딸에게 선물로 남겨주는 수 밖에.
그래도 다행이다. 남은 여생을 함께 할 당신은 스무살의 나를 읽었고, 기억해주고 있으니.